┏━애니메이션━┓/일본애니메이션작가 (8)
야마시타 순야의 피규어 캐릭터 작품세계
야마시타 순야의 피규어 캐릭터 작품세계

 이번 시간에는 일본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 디자이너인 야마시타 순야(Yamasita Shunya)
 
일러스트레이션을 원작으로 만든 피규어 작품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야마시타 순야는 다양한 게임 컨셉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정말 천재적인 일러스트레이더입니다.야마시타 순야의 작품들은 현재 많은 피규어로 작품으로도

나와있어서 피규어에 관심이 있는분들이라면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피규어가 아니였음 야마시타 순야란 인물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순야의 피규어 작품만 보입니다.^^*

야마시타 순야의 일러스트로 만들어진 피규어는 한눈에 보아도 딱 순야의 작품이다!라고 알수가 있습니다.

섹시하면서도,특유의 과감하고 정리된 디자인들로 수많은 팬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죠!

단,야마시타 순야가 남성캐릭터 일러스트를 그린것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여성캐릭터 위주로 작품을 구상하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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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순야 작품집2권의 일러스트들 입니다.

이미지출처-네이버 블로그 멘사회원의 헤브지망

그럼 최근작 위주로 야마시타 순야의 피규어 작품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피규어 자료출처는 건담마트 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피규어 제품 박스에 야마시타 순야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데...

제가 모든 피규어들을 소장하고 있지 못해서 그 일러스트를 보여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최대한 자료를 찾아서 일러스트까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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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시타순야 Creator's Labo CL#015 [아야나미 레이]피규어

"야마시타 순야"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제작!!

기존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레이와는 색다른 분위기의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입니다.

크기-26cm,PVC도색완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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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PVC 도색완성품 슈라키 트리니티 BOX-04 [니더 슈토리히] 

시리즈: 슈라키 트리니티 BOX 시리즈

야마시타 순야의 일러스트를 매력적인 피규어로 탄생시켰습니다.

침착한 분위기의 군복버젼과 찢어진 군복버젼 두가지로, 교환하실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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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PVC 도색완성품 야마시타 순야 시리즈 [코코나]
 
1번째 이미지 박스샷을 보시면 야마시타 순야의 일러스트를 볼수있습니다.

일러스트와 완성피규어를 비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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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슌야의 오리지날 캐릭터입니다.
 
  "Sweet Dreams 야마시타 슌야 작품집"에 수록되어있는 로자나를 얼굴, 몸, 의상까지
 
  야마시타 슌야의 세계를 충실히 표현한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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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PVC 도색완성품 야마시타 순야 시리즈 Funny Knights [루디] (마일스톤 한정판)

야마시타 슌야씨의 오리지날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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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PVC 도색완성품 야마시타 순야 시리즈 [미레이]

야마시타 슌야의 오리지널 피규어로,높은 퀄리티로 주목받았던 제품입니다.

전용의자와 오른팔 추가파츠, 올림머리 등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밖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지면 관계상 오늘은 여기까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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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MachineGun - 말해라눈물 [진겟타로보]주제곡

                                           SexMachineGun - 말해라눈물 - 진 겟타로보 주제곡!



안녕하세요^^ 하비스토리 운영자  하록킴 -김관호- 입니다.


요즘 제가 여러가지로 많이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곡을 듣고 있으면...모두 근심과 걱정이 모두 날아가 버림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힘을 드리고 싶습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자들만 알수 있는 열혈! 사나이의 세계!!

 

만화영화라고 무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그런 틀에 갖혀서... 우리나라가 발전을 못하는 것입니다!


 열혈!근성! 불타올라라~~!

-체인지! 진겟타로보!!-

SexMachineGun - 말해라눈물


말해라눈물!


남자라면 틀을 부셔버려!


남자잖아! 뒷 모습으로 말해라!


눈물(Hey!)


완고해서 미안해~


양보할수 없는 것이 있어


제 멋대로여서 미안해~


돌아갈수 없는 길이 있어


다정함보다는 말보다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이


이쪽이.


이쪽이..


이쪽이...


그것이 살아가는 모습!


남자라면 틀을 부셔버려!


남자잖아 뒷 모습으로 말해라!


눈물 Hey!


마음으로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줘!


그것이 살아가는 모습 남자의 길


이쪽은.


이쪽은..


이쪽은...



남자라면 꿈을 보여줘!


남자라면 틀을 부셔버려!


남자잖아! 뒷 모습으로 말해라!


마음으로 말해라!


눈물 Hey!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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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이 너무 좋아서 현재 블로그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중복될수 있으니 블로그 배경음악은 OFF하시고 감상하세요^^
  • 흠 첨보는 애니 ㅎㅎ;;
    그런데 여기말고도 봤었지만 블로그 음악 뭐라고하시는데^^;;
    저는 여기올때 항상 블로그 배경음악은 없었는데...
    배경음악이 있던가요 -ㅇ-?? 저만 안들리나
    • 겟타로보 아시죠? 그 후속작 이라고 생각하시면되요^^
      다 같은 겟타로보 시리즈 입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은 아까 설치했었는데...
      페이지 넘길때마다 음악이 처음부터 시작되서 없앴어요
      방문자분들이 불편해 하시는것 같아서^^;
      다른 좋은 방법 있으면 알려주세요.
  • 네 ㅎㅎ 케타로보도 몰라요 ㅋㅋ 어릴때 오빠들 영향으로 원래 로봇만화를 싫어했던지라.;.
    뭐 너무 오래되지 않은거 에반게리온이나 좀 유명한건 그래도 봤는데 옛날껀 잘 몰라요.
    음악은 카페나 블로그는 자체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유료로 사는거 아니면 첫페이지만 나와요.
    근데 티스토리같은경우는 전에 님 독도모금인가 딱지같은거 달았죠? ㅎㅎ
    거기다가 넣으면 돌아갈거같네요. 저도 안해봤지만 문근영시계랑 날씨랑 그런거 스킨속에 넣어서
    페이지 넘어가도 보이는거거든요 ㅎㅎhtml에 끼워넣으세요.
    중복되면 안되니까 재생/정지 버튼은 보이게 하는 쎈스~
    • 게타로보는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방송된적이 없으니
      모르실수도 있어요^^ 마징가 원작자 나가이 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면되요^^ 그리고 블로그 배경음악은 조금더
      연구를 해보아야겠어요^^;;조언 감사합니다.
  • ...크리스 벤와
    ...겟타로보의 주제가는 아닌데...사실 원곡은 따로 있죠...

    이 노래는 매드무비에 쓰인곡이죠..아마도 무슨 경찰소나오는 만화의 주제가일꺼에요

    워낙에 노래가 겟타로보랑 잘맞아서리.....

    뭐 이거 이외에도 전사여 일어서라 라는 곡의 매드도 있죠..(이건 사이버스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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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을 이용해 발성영화를 제작한 마사오카 겐조

셀을 이용해 발성영화를 제작한  마사오카 겐조


-마사오카 겐조 1898~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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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출생하나 아와지시마에서 자랐고,부동산 경영의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2년 교토에서 일본화를,상경해서는 서양화를 배운다.

일본화나 서양화를 계속 공부하여 1925년에 실사영화계 들어간다.

1927년 자산으로 아동극영화[조개궁전]을 자체제작했고,1931년 '닛카쓰타이소'에서

그의 최초의 애니메이션 [난센스.원숭이 섬]을 제작하였다.관객의 반응이 굉장히 좋아다고 전한다.

그는 아니메 업계에 입문한 것은 30세가 넘기고 나서였다.
 
1933년 쇼피쿠의 의뢰로 최초의 본격적인 발성 애니메이션 [힘과 여자세상]를 제작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

1934년 아직 고가였던 셀을 사용해[차솥의 춤]을 제작,일본 애니메이션의 기술발전에

공헌하였으나 경비부담으로 파산했다.

1941년 쇼치쿠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하면서 마사오카는 책임자로 입사했다.

1943년[거미와 튤립]은 태평양전쟁 중의 작품이라고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서정미 넘치는 명작으로

전쟁에 지쳐있는 일본인들에게 따스함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귀여운 무당벌레를 못된  깡패같은 거미가 유혹한다는 이야기 속에서 묘사된 자연 풍경은 당시 다른

작품보다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전쟁중에 만들어진 것은 기적과 같다"고 평가받고 있다.

깡패 거미에 놀란 무당벌레는 튤립 속으로 도망간다.화가 난 거미는 줄로 튤립째 감아 버리지만,

폭풍우가 몰려와 거미를 날려버린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청명한 아침하늘을 맞은 무당벌레는 그속에서 나와 튤립에게 감사하고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단편애니메이션이 대부분 이였다.

그리고 1949년에 버려진 아기고양이를 묘사한 [버져진 고양이 도라짱]도 명작이다.

1949년 마사오카는 가정과 경제적인 문제로 애니메이션 업계를 은퇴하고 아동잡지에 삽화나

만화를 집필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으로 좋은 여건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그 였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초기에는 그만큼 많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제작을 했던 것이다.

그의 열정과 노력.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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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노년의 사진과 상당히 비교가 되는 젊은 시절이다.^^;

귀공자 스타일이지만 그때부터 대머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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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공개된 난센스 필름이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알수 없으나

성인 취향의 넌센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명인기 스타를 성우로 기용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일본 최초의 발성 애니메이션

당시 부분적으로 사용했던 고가이면서 희소품이였던 셀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힘과 여자세상은 샐러리맨을 주인공으로 한 성인 위주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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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연표  <---바로가기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자료출처-미술문화[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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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야마모토 사나에

교육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야마모토 사나에

-야마모토 사나에 1898~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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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바 현 출생으로 일본화를 배우는 한편 기타야마 영화제작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배운다.기타야마가 관동대지진으로 관성지방으로 옮긴후 1925년 독립하여 야마모토 영화제작소를 설립해

[노인을 버리는 산]을 제작했다.문부성(현 문부과학성)위탁으로 교육 애니메이션[향아리]를 다음해

제작했고,이후 문부성,관청 홍보 애니메이션을 수주제작했다.

전쟁중에는 1942년 [스파이 격멸]등의 국책 애니메이션을 다수 제작.종전 직후 1945년 10월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애니메이터를 모아 신일본동화사를 설립하였으나 일감이 없어서 해산되었다.

후에 일본동화사(니치도로)에서 명작 [버려진 고양이 도라짱]등을 제작했고,1955년 도에이교육영화부

위탁으로 [흥경운 바이올린]제작을 계기로,도에이의 오카와 사장이 니치도를 매입한다.

1956년 근대적 설비의 도에이동화가 동경 네리마에 건설되어 야마모토는 스튜디오 차장에 취임한다.

1958년 일본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백사전],1960년[서유기]등을 제작했고,1968년 교육애니메이션

제작 공헌으로 '훈오동서보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애니메이션 작가로서보다는 경영면에서의 공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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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사나에의 독립 첫작품[노인을 버리는 산] 교훈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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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장편 칼라 애니메이션[백사전]


일본 애니메이션 연표 <---바로가기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자료출처-미술문화[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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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여명기의 삼인방
-일본 애니메이션 여명기의 삼인방-

안녕하세요^^ my hobby story 운영자 -하록킴-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구주자 삼인방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1917년 일본인 최초의 애니메이션 공개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본에서는 해외 애니메이션이 대단한 인기를 끌어 극장은 연일 만원사례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모카와 오텐,고우치 준이치,기타야마 세이타로 삼인방이 같은 해[1917년]에 연이어

아니메[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 공개 하였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협력하지는 않았지만, 독자적으로 해외 애니메이션 작품을 분석하여

기법을 연구해 만들었습니다.세 사람한데는 공통점이 있었는데...모두 서양화에 자질이 있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대중적인 감각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실험 애니메이션들이 많았고,영화분량도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짧았습니다.

             일본 최초의 장편칼라애니메이션[백사전]1958년, 공개되기 전까지, 위의 삼인방과 그의 자제들의

실험적인 작품과 홍보용[기업.군국주의]이 대다수 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명기를 연 선두주자로써 그들은 많은 실험적인 작품과 인재육성으로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명기 삼인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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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카와 오텐-[1892~1973]

오키나와의 미야코 섬 출생이다.오텐이 7살때 아버지가 병사하자,동경에 사는 숙부를 의지해 상경.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려 만화가 기타자와 라쿠텐문화에서 만화를 배운다.

후에 최초의 만화잡지[동경 퍽]에서 활약했다.1914년 무렵부터 미국.영국.프랑스의 애니메이션이

수입되었는데 인기가 높아서 일본 영화제작자들은 일본산 애니메이션 제작을 기획했다.

가장 먼저 착수한 사람은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시모카와였다.

애니메이션의 방법도 알지 못한채 시행착오 끝에[문지기 이모카오 무쿠조 이야기]를 제작했다.

1917년 1월 극장 공개한 것이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시모카와 오텐은 그후 몇 개의 작품을 완성시켰으나 애니메이션 제작시 강한 전구를 아래에서

비치면서 그린 당시의 기술력 때문에 눈이 상해...

1919년 만화가로 되돌가 신문이나 잡지에서 활약했다.[그의 풍속화는 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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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치 준이치-[1886~1970년]

오카야마 현 출생으로 가족과 함계 상경해서 태평양화회에서 그림을 배운다.

고바야시 상회의 의회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해, 고우치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시대극

[하나와 헤코나이 명검이야기]를 1917년 6월에 공개했다.

고우치는 고바야시 상회에서 두 편을 제작하였으나 경영난으로 제작을 중지하고

신문사에 들어가 정치만화를 그리다.1923년 스미카즈 영화창작사를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을 재개했다.

그는 1930년 발성 애니메이션[싹둑 자르기 뱀]을 제작하여 다음해 1931년 극장에서 공개하고,

애니메이션 업계를 은퇴하고 다시 신문만화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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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야마 세이타로-[1888~1945년]

와카야마 시 출생으로 서양화가 지망생으로 상경해서 기노시타 도지로 문하에 들어간다.

그림을 그리는 한편,미술잡지[현대 양화]를 발행하기도 하고,

당시 공개된 해외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느꺼,닛카쓰의 무코지마 촬영소에 일본 애니메이션

계획을 제시해 채용된다.같은해 1916년부터 제작을 시작하였으나 제작방법을 몰라서 계속 실패했다.

최초의 작품[원숭이와 게으 전투]를 완성하여 공개한것이 1917년 5월이였다.

기타야마는 제작에 신인을 채용해 기술을 가르쳤다.

신인으로는 애니메이션 작가 야마모토 사나에,가나이 기이치로가 있었다.

기타야마는 닛카쓰에서 수물두 편을 제작한뒤...

1921년에 독립해서 기타야마 영화제작소를 설립하였고,

애니메이션의 기업화와 후계자 육성해 힘썼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초기삼인방.그들은 만화가.화가였으며...

초반의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겯고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많은 인재들을 육성.지도했으며...

현재 일본 아니메가 거대한 흐름이 되어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것은

그들 선구주자의 업적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여명기의 삼인방이라 부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자료출처-미술문화[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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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오후지 노부로 -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오후지 노부로




<오후지 노부로>1900~1961년.본명:노부시치로


오후지 노부로는 동경 아사쿠사 출생으로 8남매 중 일곱 번째이다.장년 <야에>가 동생들을 키웠다.

오후지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져 일본 애니메이션 개척자 고우치 준이치에게 가르침을 받아 20살 때 독립,

첫작품<마구다성의 도적>.<바그다드의 도적>을 1926년 발표했다.

애니메이션 소재로 에도 지요가미를 이용한 것이 참신했으나 아쉽게도 일본산 컬러가 없어 지요가미의

아름다움은 표현되지 않았다.

★지요가미는 일본의 종이접기에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1927년의 <고래>는 최초의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다.오후지는 독자적으로 발성이나 컬러 연구를 계속해 1929년

<검은고양이>는 레코드식 발성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1952년 컬러 셀로판을 사용한 컬러 실루엣 애니메이션 <고래>는 칸 영화제,1956년<유령선>은 베네치아 영화제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입상.오후지는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1959년 문화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유년시절부터 오후지를 전면적으로 원조한 누나 야에의 공적 또한 지대하다.오후지의 사후 아에는 애니메이션

발전기금으로 사재를 기부하여 1962년도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부터 <오후지 상>이 신설되었다.

제1회 수상은 데즈카 오사무이며,이 상은 매년 한명씩 수상자를 선정한다.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1946년에 창설되었고  마이니치 신문사, 스포츠닛뽄신문사 등이 주최하는 영화상입니다.

전년도12월1일부터 그해11월30일까지에 공개된 전작품중에서 일본영화대상, 일본영화우수상, 개인상(감독상, 각

본상, 남/여주연상, 조감독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녹음상, 기술상), 기록문화영화상, 에니메이션영화상, 스포츠닛

뽄그랑프리 신인상, 오후지 노부로상, 타나카 키누요상, 일본영화 펜 상, 외국영화 베스트원상, 외국영화 펜상의 각

상이 뽑힌다. 대상작품은 서양영화, 일본영화 불문한다


오후지 노부로는 뛰어난 작품을 계속 제작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일본의 대표적인 아니메 작가이다.

1961년 사망했지만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그 다음해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 오후지 상이 제정된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연표 <----바로가기

한국 애니메이션 연표 <----바로가기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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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니메 초기작가 2편 컷 아웃 애니메이션의 달인[무라타 야스지]

-일본 아니메 초기작가 2편-

안녕하세요^^

이번 시간은 지난시간에 이어 일본 아니메 초기작가 2편 무라타 야스지 입니다.

-무라타 야스지-1896~1960

요코하마 출생으로 생가는 주류 판매업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화가를 지망했다.

중학교 졸업후 영화관 간판 그리기를 하다가 관동대지진이후 1923년에 설립한 요코하마 시네마에

입사한 무라타는 영화자막 타이틀을 그린다.

회사가 수입한 해외 애니메이션을 연구해 자사제작을 결심하고 무라타의 어릴적 친구 야마모토 사나에가

기타야마 영화제작소에 있었던 것을 기회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해 배웠다.그런데 야마모토는 중요한것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야마모토의 인간성이 나쁜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컷 아웃 방식이나 촬영방법은 그럭저럭 습득할수 있었고,

1927년 최초의 작품[기린의 목은 왜 긴가]에이은 [문어뻐]는 평가가 높았는데,원안과 각본은 아오지 주조였다.

아오지는 무라타 작품 대부분의 각본을 담담했다.


-문어뼈-

무라타의 애니메이션은 컷 아웃 시스템이었지만 그의 기법이 셀 사용에 필적할 정도로 훌륭해서 컷 아웃의

명수로 불렸다.그는 배경이나 케릭터를 대단히 빠르게 그렸으며 움직임의 타이밍 처리도 그때까지의 선구자들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종래의 촬영기술은 수동이었으나 무라타는 모터를 사용해 제작효율을 대폭 상승시켰다.

그는 많은 애니메션이을 만들면서,1937년에 독립해 요코하마 시네마를 퇴사하고,무라타 '만화연구소'를 설립

한후 전쟁을 위한 작폼도 만들지 않고 전후 1945년 일본만화영화에 입사하였으나 회사는 파산하였고...

무라타는 병으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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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니메 초기 작가 1편 [야마모토 사나에]

-일본 아니메 초기 작가 1편-

일본인 최초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삼인방 이후에도 많은 작가들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의 작가들을 제2세대 작가들이라고 합니다.

관동대지진으로 스튜디오 등 중요한 설비에 피해를 입은 영화업계와 아니메 부문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2세대 작가중 한명인 야마모토 사나에를 소개하겠습니다.



-야마모토 사나에- 1898~1981

지바 현 출생으로 일본화를 배우는 한편 기타야마 영화제작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배운다.

기타야마가 관동대지진으로 관서지방으로 옮긴후 1925년 독립하여 야마모토 영화제작소를 설립해

[노인을 버리는 산]을 제작했다.문부성 위탁으로 교육 애니메이션[항아리]다음해 제작했고 이후 문부성,

관청 홍보 애니메이션을 수주제작했다.

전쟁중에는 1942년 [스파이 격멸]등의 국책 애니메이션을 다수 제작.종전 직후 1945년 10월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애니메이터를 모아 신일본동화사를 설립하였으나 일감이 없어서 해산되었다.

그후 니치도 영화사의 사장을 하기도 했으나 영호사의 부채가 늘어...도에이동화사에 양도하였다.

1955년 근대적 설비의 도에이동화가 동경 네리마에 건설되어 야마모토는 스튜디오 차장으로 취임한다.

1958년 일본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 [백사전],1960년[서유기]등을 제작했고 1968년 교육애니메이션 제작

공헌으로 '훈오동서보 훈장'을 수여받았다.


일본최초의 칼라 장편 애니메이션-백사전-

야마모토 사나에는 애니메이션 작가로서보다는 경영면에서의 공적이 크다.정부의 홍보 아니메 제작에 많이

참여하여 제작회사의 비지니스 모델을 확립하였다.

그는 특출한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노력하며 작품을 계속 만들어 주위 사람들이

따르는 인물이었다.



이상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컷 아웃 애니메이션의 달인-무라타 야스지를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자료출처-미술문화[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상세보기
야마구치 야스오 지음 | 미술문화 펴냄
세계를 제패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공 역사를 살펴보는 책. 일본의 주요 수출산업으로 발전한 애니메이션 산업의 초창기에서 현재까지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의 발전과 이에 종사했던 작가와 제작자ㆍ작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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